지난주 저는 세속 지질학의 영적인 배경, 즉 성경을 부정하기 위해 만든 이론이라는 찰스 라이엘의 편지 내용과 함께 소위 홍수 지질학의 과학적 증거에 대해서 설명드렸었습니다. 제가 제시한 증거들은 세속 지질학으로는 설명할 수 없거나 굉장히 이례적인 상황을 설정하지 않으면 설명하기 힘든 것들입니다. 그럼에도 세속 과학자들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사실 그들이 이것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은 이해할만 합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노아의 홍수같은 전지구적인 격변을 가정할 수 없거나,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보면 악순환이라고 볼 수도 있는데, 성경의 말씀을 인정하지 못하기 때문에 성경의 말씀을 믿지 못하는 것이죠. 기독교인 과학자들 중에서도 전지구적인 홍수가 없었다고 주장하는 분들 혹은 그랜드 캐년 같은 곳이 노아의 홍수로 형성된 것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이런 분들의 경우 성경의 말씀을 인정하지 않는 세속 지질학자들의 의견을 인용하는 것이 대부분이죠.
과학이라는 엄밀한 의미에서 홍수 지질학은 과학이라고 보기 힘들지 모르겠습니다. 노아의 홍수라는 우리가 한번도 경험하지 못한 극단적인 상황을 가정해야만 설명이 가능한 가설들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과학이라는 굴레를 벗어나 성경에서 이야기하는 노아의 홍수라는 전지구적인 격변을 가정할 수 있다면, 그리고 그에 따른 모델들로 그랜드캐년을 비롯한 전세계 수많은 지층들을 세속과학보다 더 합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느냐?라는 점을 볼때 홍수 지질학은 훨씬 더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모델이라고 생각이 됩니다.
창조론 연대기 26화를 보고나서 특별히 반박하고 싶거나 필요성을 느끼는 곳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번주에 설교를 듣다가 갑자기 무언가가 기억이 나서 그에 대해 조금 나눠볼까 합니다.
7년 환난 그리고 천년 왕국을 이단시하는 창조론 연대기
창조론 연대기 24화에서 작가님은 7년 환난 그리고 천년 왕국이 세대주의 종말론이라고 이단시하며 비판합니다. 7년 환난 그리고 천년 왕국에 대한 종말론이 모두 세대주의라는 것도 황당하지만, 그 주장이 맞다고 치더라도 에끌은 사실 자신이 비판하는 ‘7년 환난’을 자신들의 만화를 통해서 가르치고 있었다는 것을 모르는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 에끌을 처음 알았던게, 옛날에 ‘헤븐리 스파이’라는 이름으로 운영되었을때 부터 였습니다. 당시에 연재되는 만화들을 손꼽아 기다리면서 봤을 정도로 정말 좋아했고 또 많은 은혜를 받았었습니다. 그리고 인상깊은 작품 중 하나가 안정혜 작가님의 ‘노바 솔리마’ 입니다.
다니엘 서의 70이레 예언
이 이야기는 실존 인물인 야콥 담카니 목사님과 리차드 범브란트 목사님의 회심기를 다룬 만화인데, 6화를 보면 70 이레에 대해 설명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70이레는 다니엘서 9장에 메시아가 오는 시기를 기록한 예언서로써 저 역시 많은 무신론자들에게 성경의 예언의 정확성을 설명하는 사례로 유용하게 사용했었습니다. 또, 지루한 제 글 대신 ‘노바 솔리마’ 만화 링크를 넣어서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인용하기도 했었죠.
문제는 노바 솔리마에서 사용한 이 해석이 사실상 ‘7년 환난’을 가르치고 있다는 겁니다.
성경이 얘기하는 7년 환난
성경에 삼위일체에 대한 단어가 없듯이 7년 대환난 혹은 7년 환난 이라는 단어는 나오지 않습니다. 다만 7년 동안 환난을 겪는다는 내용이 나올 뿐입니다.
성전 밖에 있는 뜰은 내버려 두고 측량하지 말라. 그것을 이방인들에게 주셨은즉 그들이 그 거룩한 도시를 마흔두 달 동안 발로 짓밟으리라. 내가 나의 두 증인에게 권능을 주리니 그들이 굵은 베옷을 입고 천이백육십 일 동안 대언하리라. <요한계시록 11:2~3>
그 여자가 광야로 도피하니라. 거기에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한 처소가 그녀에게 있으니 이것은 그들이 천이백육십 일 동안 거기서 그녀를 먹이게 하려 하심이더라. <요한계시록 12:6>
그 여자가 큰 독수리의 두 날개를 받았으니 이것은 그녀가 광야 곧 그녀의 처소로 날아가 거기서 그 뱀의 얼굴을 피하여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 동안 양육 받게 하려 함이라. <요한계시록 12:14>
또 용이 그에게 큰 것들을 말하며 신성모독하는 입을 주고 또 마흔두 달 동안 지속할 권능을 주매 <요한계시록 13:5>
잘 읽어 보시면 1,260일, 42달, 한때 두때 반때, 즉 3년 반은 계속해서 7년을 반으로 나눈 두 번의 3년반동안 기독교인들이 겪을 환난에 대해서 얘기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 말씀들을 마태복음 24장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대환난과 연결하여 문자 그대로 받아들이고 7년간 고난을 받게된다고 해석하면 ‘7년 환난’을 지지하는 것이 되고, 이를 상징이나 비유로 받아들이면 이를 지지하지 않게 되는 것 입니다.
그렇다면 위의 요한 계시록은 무엇에 근거하여 ‘7년 환난’을 (그것이 문자적이던 비유적이던) 얘기하는 것일까요? 그것이 바로 노바 솔리마가 인용했던 다니엘서 9장 입니다.
70이레의 예언을 문자적으로 해석했다면 7년 환난도 문자적으로 해석해야 한다
육십이 이레 후에 메시아가 끊어질 터이나 자기를 위한 것은 아니니라. 장차 임할 통치자의 백성이 그 도시와 그 성소를 파괴하려니와 그것의 끝에는 홍수가 있을 것이며 또 그 전쟁이 끝날 때까지 황폐하게 하는 것이 작정되었느니라. 그가 많은 사람과 한 이레 동안 언약을 확정하리니 그가 그 이레의 한중간에 희생물과 봉헌물을 그치게 하며 또 가증한 것들로 뒤덮기 위하여 심지어 완전히 끝날 때까지 그것을 황폐하게 할 것이요, 작정된 그것이 그 황폐한 곳에 쏟아지리라, 하니라. <다니엘 9:26~27>
많은 신학자들이 이 70이레의 예언에서 69 이레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이 일어나는 시기로 그리고 한 이레를 ‘7년 환난’으로 해석합니다. 특히 ‘노바 솔리마’의 작가님처럼 70이레를 문자적으로 해석한다면 나머지 한 이레 역시 당연히 문자적인 7년으로 해석하는게 옳습니다.
결론적으로 에끌은 (스스로 인지하던 하지 못하던) ‘노바 솔리마’를 통해서는 7년 대환난을 성경의 놀라운 예언으로 인정함과 동시에 ‘창조론 연대기’를 통해서는 이를 이단시하는 모순을 범하고 있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