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신론자 중에는 성경에 공룡이 등장하지 않기 때문에 성경이 가짜라고 주장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꽤 많은 기독교인들이 이런 주장에 동요를 하며 성경에 공룡이 등장하지 않는지 질문하십니다.
솔직히 저는 왜 성경에 공룡이 등장하지 않는다고 성경이 가짜가 되어야 하는지 이해하지 못하겠습니다. 성경에는 호랑이도 등장하지 않습니다. 코끼리도 등장하지 않죠. 역사속에 존재했던 특정한 동물이 성경에 등장하지 않는 것이 왜 성경을 가짜로 만드는 것이죠?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와 그 분의 복음을 설명하는 책이지 백과 사전이 아닙니다.
물론 그렇다고 일부 기독교인들이 주장하듯 성경에 공룡이 등장하지 않는것도 아닙니다.
저는 오늘 글을 통해서 여러분이 아! 성경에 공룡이 있구나 그러므로 성경은 믿을만한 책이야! 라는 결론을 얻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저는 여러분들이 성경을 어떻게 읽고 받아들여야 하는지, 수많은 기독교인들이 성경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지 그 근본적인 관점과 자세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셨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오늘 성경에 공룡이 등장하며 사람들과 공존했다는 여러가지 객관적인 증거들을 드리려고 합니다. 어떠한 객관적인 증거를 드려도 어줍잖은 진화론적 고정 관념에 막혀 증거를 인정하지 않는 분들은 항상 계시지만 부디 관념을 버리시고 증거를 바라보며 이 글을 읽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용은 이 세상에 실존했던 동물입니까? 아니면 전설속의 동물 입니까?
저는 성경에 등장하는 공룡의 존재를 찾기 전에 성경을 신뢰하지 못하는 분들이 어떤 함정에 빠지게 될수 있는지를 설명드리고 싶습니다. 과학을 신뢰하는 많은 분들이 과학과 상충되는 성경 구절들을 신화나 신학적 메세지를 담은 상징으로만 치부합니다. 심지어는 일부 성경 번역본 마저도 현대 과학에 부합하지 않는다며 단어들을 마음대로 고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예를들어 욥기 30:29를 보시겠습니다.
난 이리 떼의 친구, 타조의 벗이로구나. (쉬운 성경)
나는 이리의 형제요 타조의 벗이로구나 (개역 개정)
나는 용들의 형제요, 올빼미들의 벗이로다. (킹제임스 흠정역)
각 번역본에서 이리 혹은 용으로 번역되어 있는 단어의 원어는 탄닌(תַּנִּ֑ין) 입니다. 그리고 탄닌이란 단어의 의미는 괴물, 뱀, 용 입니다. 하지만 이미 사람들은 용이 실존했던 동물이 아니라 전설속의 동물이라는 관념을 갖고 이 단어를 이리(혹은 영어로 Jackal)로 번역합니다. 탄닌의 경우에는 탄닌이란 동물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기 때문에 사람들이 두려워 할만한 다른 동물로 번역을 하는 것이 가능합니다. 하지만 문제가 있습니다. 성경에는 히브리어로 너무나도 분명하게 알지만 우리가 과학적으로 존재할수 없다는 관념을 가지고 있는 동물 역시 등장한다는 것 입니다.
온 블레셋이여! 너를 친 자의 막대기가 부러졌다고 기뻐하지 말라. 뱀의 뿌리에서 독사가 나오고 그의 열매가 날아다니는 불 뱀이 되리라. <이사야 14:29>
…. 젊은 사자와 늙은 사자와 독사와 날아다니는 불 뱀이 나오는 땅 곧 고난과 고통의 땅으로 들어가 자기들에게 유익을 주지 못할 백성에게로 가리라. <이사야 30:6>
여기에서 불뱀이란 단어에 사용된 히브리어 사라프(שָׂרָף)는 의심할 여지가 없는 뱀입니다. 이 단어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보낸 불뱀, 그래서 장대에 매달은 불뱀을 쳐다보는 사람이 낫게되는 불뱀과 같은 단어 입니다. 여러분은 날아 다니는 불뱀을 보신적이 있으십니까? 혹은 화석으로 발견된 적이 있나요? 과학자들에게 뱀이 날아 다녔다고 주장해 보십시오. 그들은 말도 안되는 소리라며 비웃을 것 입니다.
역사속에 기록된 날아다니는 뱀
하지만 저에게는 날아다니는 뱀이 실존했다는 객관적인 증거가 있습니다. 그것은 실제로 날아 다니는 뱀을 봤던 사람들의 역사 기록 입니다.
사람들은 헤로도토스를 인류 최초의 역사학자로이자 역사의 아버지로 불립니다. 그가 기원전 5세기에 집필한 헤로도토스의 역사에서 이런 기록을 남깁니다.
내가 방문한 부토라는 도시 가까이에 있는 아라비아에 날개가 달린 커다란 뱀이 있다는 소리를 들었다. 그리고 내가 그 장소에 도착했을 때, 나는 설명이 불가능 할 만큼 엄청난 양의 뱀의 뼈와 척추를 보았다. 뱀의 형태는 물뱀과 같았고, 다만 깃털이 없는 아마도 박쥐의 것과 비슷한 날개가 있었다. 1 2
그리고 고고학자 R.W.Hutchinson은 헤로도토스의 날아다니는 뱀에 대한 기록을 우리가 관념적으로 받아들이기 이상하다는 이유로 부정하는 것을 비판하는 논문을 씁니다.3
저는 그의 지적이 합당하다고 생각하는데, 날아다니는 뱀에 대한 기록은 헤로도토스만 남긴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지역과 시대를 넘어서서 다수의 사람들이 날아다니는 뱀에 대한 기록을 남겼습니다. 1 4 5 6
많은 사람들이 지금까지 화석이 발견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그래서 현대 과학이 날아다니는 뱀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성경의 기록을 신화처럼 여기지만 날아다니는 뱀을 목격한 많은 사람들, 특히 역사학자들은 날아다니는 뱀을 목격하거나 목격자의 증언을 역사 기록에 남겨 놓았습니다.
여러분은 날아다니는 뱀을 부정하는 과학을 더 신뢰하시겠습니까? 아니면 하나님의 말씀과 이를 뒷받침하는 역사 기록을 더 신뢰하시겠습니까?
마찬가지의 이유로 성경에 기록된 용의 존재를 부정하는 기독교인들…
성경에는 용에 대한 기록이 여러번 등장합니다. 어떤 경우는 상징적인 의미 혹은 비유적 표현으로도 사용되지만 어떤 경우는 의심의 여지없이 실존했던 동물에 대한 묘사로 등장하기도 합니다.
들짐승 곧 용들과 올빼미들도 나를 존경하리라. 이는 내가 광야에 물들을 내고 사막에 강들을 내어 내 백성, 내가 택한 자들에게 마시게 할 것이기 때문이라. <이사야 43:20, 킹제임스 흠정역>
이사야서에 등장하는 용들 역시 탄닌이라는 단어가 사용되었는데, 용을 전설 속의 동물로 생각한 번역자들이 원어 그대로를 사용하지 않고 이를 이리나 승냥이 같은 다른 들짐승들로 번역해 버렸습니다.
성경에서 탄닌은 들짐승이기도하고 바다에 살기도 하는 동물로 등장합니다.
탄닌이 승냥이나 이리 같은 동물이 될 수 없는 결정적 증거는 같은 단어가 바다에 사는 용으로도 사용되기 때문입니다. 이리나 승냥이는 바다에 살지 않습니다.
그 날에 주께서 자신의 매섭고 크고 강한 칼로 꿰뚫는 뱀 리워야단 곧 구부러진 뱀 리워야단을 벌하시며 바다에 있는 용을 죽이시리라. <이사야 27:1 , 킹제임스 흠정역>
그 날이 오면, 여호와께서 그 단단하고 날카로운 큰 칼로 행동이 재빠르고 구불구불한 모양의 뱀 리워야단을 벌하시고, 바다에 있는 용을 죽이실 것이다. (쉬운 성경)
그 날에 여호와께서 그의 견고하고 크고 강한 칼로 날랜 뱀 리워야단 곧 꼬불꼬불한 뱀 리워야단을 벌하시며 바다에 있는 용을 죽이시리라 (개정 개역)
여기에서 모든 번역본이 용이라고 번역한 단어의 어원 역시 탄닌입니다. 만약 이 글을 읽고 있는 분들이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는 기독교인이라면 여러분들은 진퇴양난의 상황에 처해 있습니다. 성경은 날아다니는 뱀과 마찬가지로 분명하게 용이 실존했던 동물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창세기처럼 용에 대해 상징적인 의미라고 얘기를 할 수도 없습니다.
탄닌은 구약에 27번 나옵니다. 왜 전설속의 동물을 구약 성경에만 27번이나 등장시킬까요? 성경 구절속에서 탄닌과 함께 등장하는 동물들은 대부분 우리가 잘 아는 동물들과 함께 등장 합니다. 부엉이, 사자 등등… 하나님께서 백성들에게 말씀을 하시면서 왜 전설속의 동물들을 실존했던 동물들과 함께 설명하실까요? 상식적으로 말이 되지 않습니다.
성경의 용이 실존 했음을 지지하는 역사 기록
그렇다면 성경 외에 용을 묘사한 다른 기록은 없을까요? 놀라울 정도로 많이 있습니다. 용에 대한 기록들을 정리한 글을 링크 합니다. 참고해주시고, 오늘의 글에서는 대표적인 역사 기록 몇 부분만 인용하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