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이 단순히 소설이라면 이것이 어떻게 가능할까요? 나무 위키는 이런 더 설명하기 힘든 사실에 대해서는 정보를 제공하지 않는 편향된 자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역사적인 기록을 살펴 보겠습니다. 그들이 얘기한대로 100m 이상 크기의 목선은 존재하지 않았을까요?
역사가인 아테네우스와 플루타르크는 각각 BC 200년 프톨레마이오스 4세가 만든 테사라콘테레스라는 128m 길이의 거대 목선을 건조했다고 기록 하고 있습니다. 이 배는 방향키를 만들 필요가 없는 방주와는 달리 노를 저어 나가야 하는 군함이었습니다. 플루타르크에 따르면 이 배의 길이는 280 큐빗이며 노젓는 사람들만 4,000명이 필요한 거대한 배였습니다.
그러므로 목선이 100m 이상이 될 수 없다는 주장도 거짓입니다.
마지막으로 나무 위키는 그 커다란 방주가 흔적도 없다고 주장합니다. 첫번째로 방금 말씀드린 테사라콘테레스 역시 흔적도 없습니다. 한국의 거북선도 흔적이 없죠. 과거에 실존했던 무언가의 흔적이 없다는 것은 그 존재의 실존에 대한 부정적인 증거가 될 수 없습니다.
그렇다고 방주에 대한 흔적이 아예 없다고 단정할 수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실제 방주이던 아니던 방주를 실제로 목격했다는 주장은 여러차례 나왔기 때문입니다. 현재 아라랏산의 정상은 얼음으로 덮여 있고, 방주가 안착했을때에 그곳이 얼어있지 않았다면 지금까지 남아 있더라도 그 가장 깊숙한 곳에 있어야 합니다. 어째튼 방주는 지금 남아 있을수도 있고 없을수도 있지만, 그것이 노아의 방주가 존재하지 않았다는 증거로 사용될 수는 없습니다.
반박 5: 4.3. 동물 모으기
동물을 모으는 것에 대해서도 많은 오해가 있습니다. 사람들은 노아가 직접 동물들을 불러서 모아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성경은 그렇게 얘기하지 않습니다.
정결한 짐승과 정결하지 않은 짐승과 날짐승과 땅에서 기는 모든 것 중에서 하나님께서 노아에게 명령하신 대로 수컷과 암컷이 두 마리씩 노아에게 나아와 방주로 들어갔더니 <창세기 7:8~9>
즉 하나님의 강권으로 동물들이 노아에게 나아 왔습니다. 그러므로 각 동물이 알아서 오는 것을 불가능하게 여길 필요는 없습니다. 나무 위키는 또 노아가 살던 지역에서 멀리 사는 동물들에 대해 언급합니다. 하지만 이 역시 진화론적 모델을 창조론에 갖다 붙인 것으로 홍수가 있기 전에는 모든 지역의 환경이 거의 비슷했기에 지금 우리가 이해하는 서식지를 적용시킬수 없습니다. 많은 진화론자들이 캥거루와 같은 유대목(Marsupial) 동물이 호주 지역에만 있는 것을 토대로 생물 지리학적으로 진화론이 맞다고 주장하지만, 유대목 동물들의 화석은 아프리카, 그것도 호주 대륙과 생물 지리학적으로 전혀 연결되어지지 않은 알제리아와 이집트 등의 북아프리카에서도 발견되었습니다. 이는 진화론자들의 근거를 무너뜨림과 동시에 지금의 서식지를 바탕으로 홍수 당시의 서식지를 판단할 수 없다는 것을 알려 줍니다.
이에 대해 나무 위키도 인지하고 있듯이 고대 이집트 벽화에서 사하라 사막이 원래 푸른 초원이었다는 기록을 통해 지금과 기후가 달라 서식지가 다를수도 있음을 언급하고 있고, 사하라 사막 뿐 아니라 북극과 남극등 기후가 온난할 수 없는 극지방도 역시 온난했다는 근거를 위에 제시한바 있습니다.
진화론자들은 또 환기의 문제도 제기합니다. 방주에 창문이 하나밖에 없는데 냄새와 산소의 공급을 어떻게 했을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는 것 입니다.
너는 방주에 창을 만들되 위에서부터 일 큐빗 안에 그것을 완성하고 방주의 문은 방주 옆으로 내며 그것을 아래층 둘째 층 셋째 층으로 만들지니라. <창세기 6:16>
이는 합리적인 의문처럼 보이긴 하지만, 성경에 대한 오해로 인한 것이기도 합니다. 노아의 방주에 창은 하나만 두라고 한 것이 맞습니다. 하지만 성경에서 얘기하는 창은 채광을 위해 지붕에 만든 창문이 하나라는 것이지 통풍구를 하나만 만들라는 얘기가 아닙니다. 창세기 6장 16절에 쓰인 창의 원어 쵸하(צֹ֣הַר ׀) 의 어원은 빛(light), 정오 (midday) 입니다. 실제로 창세기 6장에선 언급이 없지만 홍수가 끝난 8장 13절에는 방주에 덮개를 걷어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제육백일년 첫째 달 곧 그 달 첫째 날에 물들이 땅에서 마르매 노아가 방주의 덮개를 치우고 보니, 보라, 지면이 말랐더라. <창세기 8:13>
다시 설명하면, 방주에 채광을 위한 창은 하나였지만 다른 통풍구들은 존재했을 것 입니다. 또 비가 오지 않았을때에는 방주의 덮개를 열었다 닫았다 할 수 있었을 것 입니다. 그러므로 방주에 환기 문제도 성경에 대한 오해 특히 다른 구절들을 읽지 않는 우를 범해서 생기는 문제일 뿐 실제 노아의 방주를 부정할 증거가 되지 못합니다.
또 노아의 홍수에 관해서 많은 분들이 저에게 질문하는 것 중에 하나가 어류들의 생존입니다.
그들은 홍수로 인해 담수와 해수가 섞였을 것이고 이로 인해 담수어와 해수어가 환경의 변화에 의해 죽었어야 한다는 논리로 홍수의 불가능함을 설명합니다. 이에 대한 첫번째 답은 대체적으로 그들의 말이 맞다는 것 입니다. 세속 과학자들은 지구의 역사 동안 5번의 대멸종이 일어나서 지금까지 지구에 살았던 생물의 90%가 멸종되었다고 주장합니다. 창조론자들 역시 그들의 주장에 어느 정도 동의를 합니다. 다만 그들이 수십억년간 5번의 멸종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수천년 전에 노아의 홍수로 인해 일어났다고 얘기하는 것 입니다. 그들이 지구 상에 살았던 90%가 멸종되었음을 아는 근거는 화석입니다. 그리고 화석의 대부분은 해양 생물입니다. 그러므로 엄청난 수의 어류가 멸종했다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모든 어류가 완전히 멸종해야 하느냐의 여부입니다.
우리는 담수와 해수에 동시에 생존할 수 있는 어류들이 많이 있음을 압니다. 대표적으로 연어는 민물에서 태어나서 바다로 나가서 살다가 다시 민물로 돌아와 생을 마감합니다. 어떻게 이들은 담수와 해수에서 모두 살 수 있을까요? 담수어가 해수에 해수어가 담수에 살 수 없는 이유는 삼투현상 때문인데, 체내 염도와 체외 염도의 차이에 의해 세포내에 탈수로 죽거나 수압이 높아져서 죽게되는 원리입니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물고기들은 어느 정도의 삼투조절 능력을 갖고 있습니다. 다만 이런 조절 능력과 농도의 차이에 따라 생존할수도 그렇지 못할수도 있는 것 입니다.
진화론자들이 가장 잘못 갖고 있는 생각은 진화가 가능하다는 것 입니다. 이 잘못된 과학지식 때문에 모든 것을 거꾸로 생각합니다. 하지만 위에 유전적 엔트로피에 대한 영상에서 볼 수 있듯이 돌연변이는 개체의 퇴화나 기능의 저하를 갖고 오지, 발전을 갖고 오지 못합니다. 만약 노아의 홍수 당시에 많은 물고기들에게 지금보다 더 뛰어난 삼투 조절 능력을 갖고 있었는데 돌연변이와 자연선택에 의해 그 조절 능력이 저하되었고 또 민물이나 바닷물의 특성에 유리한 형질의 물고기가 살아남아 담수어 그리고 해수어가 되었다면 모든 물고기가 다 멸종했어야 한다는 그들의 주장은 거짓이 됩니다.
이런 비슷한 예를 우리는 직접 관찰한 적이 있습니다.
빙하로 인한 순도 100%의 물성분과 염분 농도가 높은 바다가 만나면 물이 섞이지 않고 경계가 생깁니다.
1980년 세인트 헬렌 화산이 폭발했을때, 엄청난 화산재가 근처에 있는 스피릿 호수로 밀려와 알칼리도가 15,000배 수온이 4°C 에서 22.4°C로 혼탁도가 33배가 증가 했습니다. 이 때 많은 물고기가 죽었고, 이런 엄청난 환경의 변화는 당연히 스피릿 호수에 있는 어류가 모두 멸종했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10년 안에 그곳의 생태계는 다시 복원되었습니다.
전지구적인 격변의 경우 스피릿 호수에 있었던 환경의 변화에 비하면 훨씬 더 변화가 미미했을 것이고, 모든 어류의 멸종은 더 불가능 했을 것 입니다. 물이라고 해서 무조건 섞이는 것도 아니고 사진에서 보이는 것 처럼 물의 경계가 생기기도 하며, 그것이 섞인다고 해서 생태계가 파괴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민물과 바닷물이 만나는 기수역은 조수 간만에 의해 염분의 농도가 0.5 ‰(퍼밀·1천 분의 1) ~ 30‰까지 커다란 변화가 있지만 오히려 그로 인해 다양한 생물이 살수 있는 환경이 되기도 합니다.
정리하면 방주에 동물들이 타는 것이 문제가 되지 않으며 모든 어류가 멸종해야 할 이유도 없습니다. 자연 생태계의 복원력은 진화론자들이 훨씬 더 잘 알고 있으리라 생각합니다.